다큐 (EBS 자본주의-세상을 바꾼 위대한 철학들), 개요, 주요 이론, 정리


개요

2008년 시작된 미국발 금융위기는 쉽게 진정될 줄 알았지만, 그 파장은 그리 쉽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자본주의는 수없이 많은 위기의 파도를 거쳐왔고, 그때마다 경제학이 던진 새로운 아이디어는 그 위기를 헤쳐 나갈 이정표가 되어주었습니다. 이번 화에서는 전 세계에 통찰력을 던져준 경제학자들(애덤 스미스, 마르크스, 케인스, 하이에크)의 이론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주요 이론

대부분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표현으로 애덤 스미스를 기억할 것입니다. 1759년 자유롭고 진취적인 학풍으로 유명했던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의 도덕·철학 교수인 애덤 스미스는 사람들의 본성과 행동을 꾸준히 연구하여 도덕 감정론이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어찌 보면 아주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데,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인데 어떻게 그 이기심을 누르고 도덕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 그것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고 도덕적인 행동을 하게 만드는 ‘공명정대한 관찰자‘가 우리 안에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한편 우연한 기회로 한 공작 아들의 가정교사 역할을 맡아 유럽 대륙 여행을 하게 되고, 이를 계기로 그는 다양한 사상과 이론을 흡수하게 됩니다. 때는 18세기 산업 혁명과 자본주의가 막 시작된 시기여서 생산은 활발했습니다. 동시에 제품 판매를 위한 자유무역이 필요성이 중요하게 대두되던 시기였고, 보유하고 있는 금·은의 양으로 국부를 평가하는 중상주의를 숭상하던 시기였습니다.

이때 프랑스의 경제학자였던 프랑수아 케네로부터 영감을 얻게 됩니다. 케네의 아이디어는 사회를 하나의 육체로 보고, 인간이 노동으로 식량과 원료를 얻고, 상품을 유통해야 사회가 성장한다는 이론이었습니다. 여기에 화폐는 혈액의 역할을 하고 토지만이 부의 원천이라는 중농주의에 기반한 주장을 덧붙입니다. 여기서 애덤 스미스는 국부를 새로 정의하는 것과 국부의 증진에 중점을 두고 그만의 연구를 진행하고, 1776년 드디어 그의 대표작 국부론이 탄생하게 됩니다. 국부는 생산적인 노동에서 비롯된다고 보았고, 상품의 가치는 생산하는데 들어간 노동량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더불어 돈을 벌고 싶은 우리의 이기심에 의해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지고, 가격을 결정하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시장경제가 활발하게 돌아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즉 국부 증진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로운 시장 경제 체제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국부론이 가져다준 의의는 현대 경제학의 근간을 이루는 많은 개념과 기본 원리를 이미 그 시절에 담고 있다는 점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19세기 후반 독일의 철학자 겸 경제학자인 칼 마르크스의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칼 마르크스는 ‘빈곤의 이유’‘자본주의는 과연 이상적인 체제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얻으려고 노력했습니다. 1843년 마르크스는 급진적인 반정부 신문인 라인 신문의 편집장이었습니다. 점점 정치와 세상의 부조리에 눈을 뜨게 되고, 신문에 대한 당국의 검열에 지친 마르크스는 파리로 거처를 옮깁니다. 거기서 그는 경제학자 엥겔스와 공산주의를 만나게 되고, 혁명적인 공산주의자로 변모하여 엥겔스와 함께 1848년 공산당 선언을 발표합니다. 급진적인 혁명에 참여하면서 각국에서 추방 명령을 받게 되고, 1849년 영국으로 망명합니다. 영국에서의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드디어 그의 역작 ‘자본론’을 집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원래의 집필 의도는 자본주의 모순과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함이었고, ‘이윤이 어디에서 나오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해답을 발견하게 됩니다. 원료와 생산비용은 합당한 투입 비용을 계산하지만, 인간의 노동은 적절히 대우받지 못하고, 노동자가 일궈낸 잉여 이윤(가치)은 자본가의 손으로 들어가고, 이것이 자본주의 모순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말합니다. 더불어 자본주의의 붕괴와 공산주의의 등장을 예견했습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철학을 통해 자본주의 경제를 이해하려 했습니다. 그의 연구와 저술은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당대의 노동자에 대한 연민 때문에 시작되었다는 사실에 의의가 있을 것입니다.


정리

국부론에서 아주 유명한 문구를 영국의 한 학자가 언급합니다. ‘국민 대부분이 가난하고 비참하게 산다면 그 국가는 부유하다고 말할 수 없다’ , 애덤 스미스는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의 이기심은 사회의 도덕적 한계 내에서만 허용되고, 이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사용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후대 공리주의자들이 주장했던 ‘최대 다수의 최대행복‘은 애덤 스미스의 정신이 계승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지적함과 동시에 억압받는 노동자들을 위해 공산주의 혁명을 실현하려 했습니다. 후대에 마르크스에 의해 영향을 받은 여러 혁명가(레닌, 스탈린, 마오쩌둥 등)가 등장합니다만, 그들이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담고자 했던 사상을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의문입니다. 자본주의 국가들은 아직 잘 버티고 있고, 공산주의 국가는 20세기 후반 독재와 빈곤에 허덕이다가 무너지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르크스의 주장이 퇴색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여러 학자에 의해 그 형태를 변형해 가면서 살아남아, 현대 자본주의가 낳은 여러 문제점에 관해 아직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기 때문입니다. 시대를 앞서간 사상과 이론을 발표했던 경제학자들은 지금 현대 사회의 불평등과 위기를 어떻게 평가할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물론 그들이 애초에 바랐던 모습은 아닐 것 같습니다. 마지막 화에서는 현대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경제학자, 케인스와 하이에크에 관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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