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트루먼 쇼> 발단, 줄거리, 결말, 리뷰

PD와 트루먼 쇼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쇼의 진실성과 가치에 찬사를 보내는 인터뷰를 하면서 씨헤이븐에서의 트루먼의 하루가 시작된다. 이웃들과 나누는 일상적인 인사도 어딘가 작위적이다. 세트장 위에서 떨어진 카메라 하나로 트루먼의 일상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출처: ‘트루먼쇼’ 스틸샷>

발단

아주 오래전에 감상한 영화지만 미디어의 부작용, 특정 개인(예: 연예인, 스포츠 스타, 기타 유명인 등)에 대한 과도한 관심, 무분별한 간접 광고 등 오히려 현대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특히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영화 ‘가타카’와 같은 각본가의 작품이라는 점이 다시 감상할 이유를 더해주었다. 쇼의 PD인 크리스토프(에드 해리스)는 강조한다. 우리는 과도한 연출, 효과와 진실이 없는 가짜 연기에 질렸다고, 다만 쇼 자체는 가짜일지 모르지만, 트루먼(짐 캐리)의 삶에는 진실이 있다는 설명을 덧붙이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줄거리

PD와 트루먼 쇼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쇼의 진실성과 가치에 찬사를 보내는 인터뷰를 하면서 씨헤이븐이라는 섬에서의 트루먼의 하루가 시작된다. 일단 아침에 이웃들과 나누는 일상적인 인사들도 어딘가 작위적이다. 세트장 위에서 떨어진 카메라 하나로 각본에 기반해 짜인 트루먼의 일상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비행기 사고가 있었다는 라디오 뉴스와 사고가 이렇게 빈번한데도 비행기를 타고 싶냐는 진행자의 질문이 여지없이 이어지면서 사건을 무마한다.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지만 최근 빈번하게 사용되는 단어 ‘가스라이팅’의 정확한 예시가 아닌가 싶다. 트루먼은 세트장을 벗어나서는 안 되고, 그런 생각을 품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세트의 공간은 온전히 트루먼을 위해 존재하고, 심지어 영화의 시점조차 카메라 렌즈의 모양에 맞춰 둥글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트루먼이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단지 트루먼과 광고가 잘 드러나게 하기 위한 조력자 혹은 연출을 위한 조연으로서 기능할 뿐이다. 씨헤이븐을 떠나 피지로 가고 싶어 하는 트루먼과 달리, 매번 간접 광고를 하면서 등장하는 아내 메릴(로라 리니), 광고처럼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켜며 등장하는 친구 말론, 이렇듯 가장 가까운 지인들은 트루먼이 현재에 안주하기를 원한다. 그것이 그들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첫사랑 실비아를 회상하는 트루먼, 애초에 실비아는 트루먼 쇼의 각본에서 오래 등장할 인물이 아닌 단역 연기자였다. 스태프들의 훼방에 그들의 관계는 오래 지속될 수 없었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아야 했다. 단 한 번의 데이트를 마지막으로 다시는 실비아를 볼 수 없었다. 실비아는 트루먼에게 모두가 너를 알고 있고, 모두가 연기를 하고 있다는 말을 던지면서 아버지에 의해 끌려가 사라진다. 그녀의 아버지가 남긴 “우리는 피지로 간다”라는 대사가 그녀의 행방을 찾을 유일한 단서가 된다. 실비아를 회상하는 트루먼을 현실의 실비아가 TV 화면을 통해 바라보고 있다.

트루먼은 아버지와 함께 요트를 타다가 아버지가 사망한 사실을 떠올린다. 엄밀히 말하면 사망이 아니고 퇴장이 맞겠지만, 어쨌든 트루먼에게 물에 대한 트라우마를 심어 주는 게 주된 목적이었을 것이다.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아버지는 일반인으로 위장한 스태프들에 의해 급하게 쫓겨난다. 출근길에 차에서 듣던 라디오가 혼선되면서, 트루먼의 동선을 스태프들이 보도하는 내용이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고, 트루먼은 씨헤이븐에서의 생활에 점점 의심을 품게 된다. 씨헤이븐이 큰 세트장이라는 진실을 점점 파악하게 되고, 일상에서 탈출할 계획을 세운다.

피지 여행을 위해 여행사를 방문한 트루먼, 낙뢰를 맞는 비행기 포스터(‘당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를 벽에 붙여 놓은 것이 인상적이다. 예약이 꽉 찼다는 소식을 듣고 버스 터미널에 가보지만, 버스 역시 고장으로 출발하지 못한다. 길에서 갑자기 화재가 발생하고, 원자력 발전소에서 방사능이 누출되는 등 온갖 인위적인 상황이 씨헤이븐을 떠나려는 트루먼을 가로막는다. 아내 메릴를 의심하고 진실을 추궁하는 트루먼, 이를 말리려 등장한 말론과 함께 맥주를 마신다. 크리스토프가 전해주는 대사를 그대로 따라 읊으면서 말론이 트루먼을 위로하는 장면, 갑자기 아버지가 등장하는 연출된 장면에서 조악하고 우스꽝스럽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특히 아버지를 껴안고 우는 트루먼의 모습은 감격이라기보다 모든 진실을 알아버린 허탈한 웃음으로 느껴졌다. 영화는 시청자들과 트루먼의 삶을 교차해 가면서 보여준다. 트루먼의 나이인 30년 동안 전 세계 220개국에서 방영된 트루먼 쇼는 많은 시청자를 가지고 있었다. 크리스토프가 TV쇼의 인터뷰에 등장하고, 아버지의 재등장 배경에 관해 설명한다. 트루먼을 단순한 캐릭터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그는 트루먼의 진짜 아버지인 동시에 창조자이기 때문이다. 시청자와의 소통 시간이 주어지고, 실비아와 통화를 하게 된다. 트루먼을 세상의 구경거리로 만든 행적을 비난하는 실비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느냐는 질문에 트루먼에게 안전하고 평범한 삶을 가져다줬다며 인터뷰를 마친다.


결말

다음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상을 보내고 잠에 든 트루먼, 스태프들은 그를 계속 관찰했다고 생각했지만, 트루먼은 이미 몰래 탈출을 한 상황이었다. 스태프, 연기자 할 것 없이 모두가 트루먼을 찾고 있던 그 시각, 트루먼은 요트를 타고 그토록 바라던 피지를 향해 항해하고 있었다. 시청자들과 스태프는 술렁이고, 이내 마음을 먹은 듯 인위적인 폭풍우로 트루먼의 항해를 막으려 한다. 마침내 세트장의 끝에 도달한 트루먼, 뱃머리가 세트장에 부딪히고 밖을 향해 걸어간다. 크리스토프는 갖은 이유를 붙이며, 트루먼이 떠나는 것을 말리려 한다. 하지만 “오늘은 다시 못 볼지도 모르니, 미리 전할게요. 좋은 오후, 저녁 그리고 밤 되세요”라는 영화의 도입부에 등장했던 대사를 다시 말하면서 트루먼은 세트장을 떠난다.


리뷰

트루먼이 세트를 떠나는 장면에서 단순히 트루먼 자신뿐만 아니라, 무언가에 매여 있었던 시청자들도 해방감을 느끼며 환호한다. 다만 바로 TV 편성표를 찾으며 다른 흥미 있는 프로를 찾아 헤매는 시청자의 모습은 자신도 모르게 자극과 도파민에 익숙해진 현대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뒷맛이 꽤 씁쓸하다. 98년 개봉작이니 벌써 20년이 넘은 작품이고, 당시에 보았을 때는 그저 자유를 갈망하는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라는 단편적인 기억밖에 없었다. 감상을 마친 현재의 나는 ‘창조자의 만류를 거부하고 세트장 밖으로 나간 트루먼은 과연 현실 세계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 ‘대중들은 트루먼을 대신할 또 다른 관음의 대상을 찾지 않을까?’라는 궁금증, ‘쉽게 각인되고 쉽게 잊히는 현대 미디어의 속성’을 영화가 대변하고 있다는 느낌, 여러 감정이 뒤섞인 상태로 글을 끝맺음 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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