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 스탠 리> 발단, 인생, 리뷰


발단

슈퍼 히어로 코믹스 잡지인 마블 코믹스의 편집장이었던 스탠리 마틴 리버(이하 스탠 리)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스탠리는 2018년 사망했기 때문에 그의 생전 영상에 애니메이션 형식의 스토리를 더해 다큐를 구성했다. 스탠 리는 일상의 경험을 토대로 슈퍼 히어로를 창조하고 작품의 줄거리를 구상했다. 스탠리가 창조한 슈퍼 히어로가 다른 영웅들과 차별화되는 점은, 특별한 힘을 제외하면 주변의 일반인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1922년 뉴욕에 태어난 스탠 리는 독서를 좋아하고, 간신히 돈을 모아 영화를 보러 다니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하지만 대공황 시기 그의 가족들은 가난했고, 스탠 리는 이른 나이에 의류 제조 업체의 사무 보조원으로 취직하지만, 크리스마스이브 며칠 전 해고를 당한다. 그는 이 시기에 해고당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자신은 없었을 거라고 회상한다.


인생

1939년 우연히 삼촌의 회사에서 직원을 뽑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하게 된다. 그 회사는 타임리 코믹스라는 회사였고, 코믹스 잡지를 출간하고 있었다. 조 사이먼과 잭 커비, 두 명이 코믹스 부서를 이끌고 있었고, 출간하던 잡지에서 당시 가장 공을 기울이던 캐릭터가 바로 캡틴 아메리카였다. 그들은 스토리에 당시의 세계정세를 반영하려 했다. 조와 잭은 힘겹게 스토리를 짜고 있었고, 어느 날 스탠 리에게 스토리를 한번 써보지 않겠냐고 묻는다. 스탠 리는 코믹스 산업에 대한 당시 자신의 인식을 직접 말하는데, 단지 경험을 쌓기 위한 발판으로 여겼으며, 언젠가는 훌륭한 작가가 돼서 걸작을 남기고 싶었다고 전한다. 코믹스 관련 일은 진정한 작가가 할 일은 아니라고 여겼다. 그래서 본명을 숨기고 스탠 리라는 필명을 짓고, 작가로서 참여한 첫 작품이 캡틴 아메리카였다. 이후 조와 잭이 회사를 떠나고 스탠 리는 17살에 임시 편집장 겸 작가를 맡게 된다.

1941년 일본의 진주만 침공으로 태평양 전쟁이 벌어지고 스탠 리는 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전선으로 파병을 예상했지만, 그의 이력을 살펴본 군 담당자는 홍보영화 촬영 및 교육자료 제작 부대로 그를 배치한다. 그는 코믹스 형식으로 자료를 제작했고 이는 교육 기간 단축에 일조했다고 전해진다. 전역 후에 그는 회사로 돌아가, 당시의 트렌드에 맞춰 여러 작품을 찍어 냈다. 그는 수석 편집자, 감독, 작가로서 많은 돈을 벌고 있었고, 창작한 작품에 대해서는 별도로 수당을 받았다.

50년대의 사회 분위기는 코믹스를 괄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스탠 리가 작가라고 본인을 소개하면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무엇을 그리냐는 질문에 코믹스라고 대답하면 대부분 실망한 반응을 보였다고 전한다. 당시의 분위기를 반영하듯 코믹스는 청소년에게 유해한 매체로 간주되고, 작품 출간 전에는 출판사들이 설립한 자체 심의 기구(CCA)의 심사를 받아야 했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코믹스를 팔아서 돈을 버는 것이 건설, 의학 같은 다른 유용한 분야에 비해 하찮은 일처럼 여겨져, 자괴감을 느끼게 됐다고 스탠 리는 고백한다. 현재의 기준으로 보면 코믹스가 파생시키는 사업영역(애니메이션, 게임, 캐릭터, 영화 등)이 무궁무진하고 막대한 부가가치 창출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보면 격세지감이라는 말 외에 다른 할 말이 없다. 이 시기의 스탠 리는 아내의 권유로 직접 캐릭터를 창조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마침 경쟁사 DC 코믹스에서 ‘저스티스 리그’라는 슈퍼 히어로 집단의 이야기를 출간했고 인기가 대단했다. 이에 고무된 타임리 코믹스의 발행인 마틴 굿맨은 스탠 리에게 비슷한 형식의 코믹스를 출간해 볼 것을 권한다.

이를 일생일대의 기회라 여긴 스탠 리는 아이디어를 구상하게 된다. 마침 잭 커비가 회사로 복귀하고, 인간미 넘치고 실수도 하는 전례 없는 영웅을 창조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만들어진 슈퍼 히어로 그룹이 ‘판타스틱 포‘였다. 이 시점을 계기로 팬레터가 쏟아지고, 신문과 잡지에 논평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스탠 리 일행은 새로운 독자층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전까지는 청소년 대상의 매체로 간주되던 코믹스가 드디어 양지에서 성인 취향의 콘텐츠를 생산하게 된 것이다. 이 부분이 상당히 고무적인 것이, 한국에서도 90년대까지는 만화가 유해 매체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었지만, 지금은 다양한 사업 아이템으로 재생산되고, 여러 세대에게 소비되고 있다.

드디어 사명을 마블 코믹스로 변경하고, 스탠 리는 자신을 옭아매던 열등감과 자괴감을 벗어던지고 코믹스 작가로서 자부심을 가지게 된 때가 이 시기라고 언급한다. 그 뒤로 지킬박사와 하이드에서 모티브를 얻어 헐크를 창조하고, 주변인(비서, 아내)을 코믹스의 캐릭터로 녹여낸다. 점점 늘어나는 독자 수요를 감안하여, 작화가와 스토리 작가 간의 업무 분담이 이루어진다. 60년대에는 문제가 많은 10대 소년이라는 캐릭터를 토대로 스파이더맨을 구상하기 시작한다. 완전무결한 영웅이 아닌 끊임없이 고민하고 고뇌하는 불완전한 캐릭터를 창조하고 싶어 했다. 스파이더맨은 대흥행하게 되고 시리즈로 만들어지게 된다. 슈퍼 히어로 중에 제일 평범하고, 가난하고, 찌질한 캐릭터가 스파이더맨인데, 전지전능한 슈퍼 히어로가 아닌 독자들이 공감하고 할 수 있는 캐릭터를 구상한 스탠 리의 안목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신선했을 것 같다.

캐릭터 구상에 대한 갈증은 계속되고, 그리스·로마 신화가 아닌 다소 생소한 북유럽 신화를 토대로 캐릭터를 구현하려 했고, 그의 관심을 끈 것이 천둥의 신 토르였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그들이 창조한 영웅들이 같은 세계관을 공유한다는 가정, 즉 마블 유니버스를 기반으로 여러 영웅을 한 작품에 같이 출현시키는 시도를 한다. 더불어 악당에게도 매력적인 성격을 부여하여, 악행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명분을 독자에게 전달하려 한다. 독자들도 성장한다는 점을 고려하여, 이분법적인 선과 악 구분보다는 오히려 그 구분이 모호해지는 방향, 즉 마블만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향으로 스토리를 구성하게 된 것이다.

초창기부터 스탠 리는 아이디어 제공과 스토리에 공을 들이고 있었다. 대표적인 작품이 스파이더맨이었다. 이에 대해 스파이더맨의 작화가였던 스티브 딧코는 만족하지 않고 결국 회사를 떠난다. 매주 출간되는 작품의 숫자가 점점 많아지면서 스탠 리와 직원들은 지쳐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마블의 초기 멤버이자 베테랑 작화가 잭 커비마저 회사를 떠난다. ‘누구의 역할이 더 크고 중요한가?‘에 대한 무언의 논쟁이 있었던 것 같다. 1987년 잭과 스탠 리는 라디오 방송에 같이 출연, 두 사람 간의 논쟁이 시작되고, 잭은 작화와 스토리를 한 사람이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1972년 스탠 리는 현업에서 물러나 발행인의 역할을 맡고, 수석 편집장 로이 토마스를 새로 임명한다. 그는 작품과 관련된 모든 일은 작가에게 믿고 맡겨야 한다는 사실을 당시에 깨닫게 되었다고 언급한다. 발행인으로서 여성 독자들의 비중이 10%나 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여성 슈퍼 히어로를 등장시킬 계획을 한다. 그리고 작품에 있어서 작가들의 자유재량을 허용해 주게 된다. 이제는 코믹스 작가가 아닌 사업가의 영역으로 들어서고 있었지만, 그는 자신이 회사의 장기 계획을 수립하는 경영자, 사업자의 역할이 맞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신 전국을 돌면서 마블 코믹스를 홍보하는 역할을 자처한다. 하지만 마블은 결국 다른 회사에 매각되고, 스탠 리는 슈퍼 히어로의 저작권에 대해 무심했던 자신을 자책한다. 2010년 스탠 리와 그의 동료들이 창조한 영웅들이 영화로 제작되기 시작한다. 감독, 배우, 대중들은 마블 유니버스를 창조한 스탠, 잭, 스티브의 공에 찬사를 보내면서 다큐는 끝을 맺는다.


리뷰

유해하다고 인식되던 코믹스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바꾼 것이 스탠 리의 가장 큰 공이다. 여기에 더해 완벽하지는 않지만, 인간적인 캐릭터를 슈퍼 히어로에게 부여해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게 만든 점, 스토리 구성 단계에서 다양한 세대가 즐길 수 있도록 대학생 수준의 어휘를 선택한 점, 다양한 계층과 성별, 세대가 공감할 수 있도록 10대, 여성, 다양한 인종의 슈퍼 히어로를 창조해 낸 스탠 리는 가히 전 세계 코믹스 산업의 선구자이자 아버지라 불릴 만하다. 다만 스토리작가와 작화가가 깔끔하게 분업화된 현대와는 달리, 스탠 리가 한창 활동하던 시기에는 이 부분이 명확하지 않았던 것 같다. 결국 슈퍼 히어로 캐릭터의 창조자가 누구인가(아이디어와 스토리 vs. 작화)라는 논쟁 끝에 잭 커비, 스티브 딧코와의 관계가 좋지 않게 끝났다. 최근까지도 마블의 주요 캐릭터들에 대해 디즈니(마블을 자회사로 두고 있음)와 만화가 및 그 상속인들 간 법정 분쟁이 있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생전 캐릭터 저작권에 대해 무지했다고 고백했던 스탠리의 자책이 일견 납득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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