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타인의 삶> 배경, 줄거리, 결말, 후기

1984년 냉전이 절정이었던 동독의 동베를린을 배경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대부분의 동독 시민은 비밀경찰 슈타지의 엄격한 감시와 감독을 받는 상황이다. 슈타지 요원 비즐러가 극작가 드라이만과 그의 연인 크리스타를 감시하기 시작한다.
<출처: ‘타인의 삶’ 스틸 샷>

배경

1984년 독일, 냉전이 절정이었던 동독의 동베를린을 배경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정보의 자유와 공개’(Glasnost)는 사라지고 없었으며, 대부분의 동독 시민은 비밀경찰 슈타지의 엄격한 감시와 감독을 받는 상황이었다. 동독의 독재정권은 대량의 감청 요원과 스파이를 고용해 모든 시민의 정보를 파악하려 하고 있었다. 슈타지의 심문관인 동시에 강사인 비즐러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심문 과정을 녹취한 테이프를 학생들에게 들려주자, 한 학생이 잠을 재우지 않는 건 비인간적이지 않냐고 질문을 한다. 질문한 학생의 이름에 벌점으로 생각되는 표시를 하고 자신의 지론을 말한다. “잠을 재우지 않으면 결백한 사람은 화를 내고 분노하지만, 죄가 있는 사람은 점점 조용해지고 침묵하거나, 울기 시작한다. 여러분은 도청이란 직업을 통해 항상 사회주의의 적들과 직면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강의를 마친다. 이렇듯 이분법적으로 죄인을 판단·구분하는 그의 사무적이고 기계적인 태도를 통해 비즐러라는 캐릭터의 성격·가치관에 대해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줄거리

비즐러의 대학 동기이자 상사인 그루비츠는 같이 연극을 보러 갈 것을 권하고, 거기서 문화부 장관인 햄프, 연극 작가 드라이만과 그의 연인이자 연극배우인 크리스타를 보게 된다. 본인의 직감으로 드라이만과 마리아를 불순분자로 여기는 비즐러, 장관은 그루비츠에게 두 사람의 감시를 명령한다. 장관은 예술가 모임의 주변에서 사회주의에 반하는 인물들을 감시·선별하고 처벌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다음날 드라이만과 크리스타가 집을 비운 사이 슈타지는 그에 집 내부 곳곳에 감시 및 도청을 위한 장치를 설치하고, 비즐러는 도청을 시작한다. 동시에 비즐러는 크리스타를 집에 데려다주는 리무진을 보게 되고 상부에 보고한다. 그루비츠는 리무진이 장관의 차량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이 일을 묵인하도록 지시한다. 장관은 드라이만을 포함한 예술계 인물들에 대한 선처를 대가로 크리스타를 성적 노리개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크리스타는 고통과 스트레스 때문에 금지 약물을 복용할 만큼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있었다. 비즐러는 리무진에서 크리스타가 내리는 장면을 드라이만이 목격하도록 유도하지만, 드라이만은 특별한 반응 없이 그녀를 조용히 맞아 준다. 아마도 이 장면이 냉혈하고 차가운 마음으로 사회주의와 당의 충견으로 일하던 비즐러의 마음속에 변화가 생긴 계기인 것 같다.

장관과의 약속을 위해 외출하는 크리스타를 드라이만이 만류하지만, 크리스타는 반제체 인사로 몰려 연극계에서 퇴출되고 자살한 동료이자 연출가인 예르스카의 일을 언급하며, 집을 나선다. 괴로운 마음에 혼자 술을 마시던 크리스타, 비즐러가 나타나 관객으로서 그녀를 응원하고 있다고 격려의 메시지를 더하고 크리스타는 집으로 돌아간다. 예르스카의 장례식에 참석한 드라이만,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국가의 안보와 행복이라는 명목 아래 체재 밖으로 내몰려서 자살했는지, 그리고 1977년 이후로 동독에서는 자살률이 집계조차 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예르스카를 애도한다. 드라이만은 동료들과 함께 동독의 실상을 알릴 기사를 서독의 슈피겔 지에서 출간할 계획을 세우고, 비즐러는 이 일을 그루비츠에게 보고하지 않고 눈 감아 버린다. 추적을 피하고자 다른 서체를 가진 타자기와 붉은 잉크를 쓰고, 원고는 몰래 서독으로 전달된다. 얼마 후, 슈피겔 기사 내용이 동독에도 보도되고, 크리스타는 약물을 구매하던 병원에서 체포되고, 드라이만은 가택 조사를 받게 된다.


결말

그루비츠의 협박에 크리스타는 기사의 작성자가 드라이만이라는 사실을 자백한다. 그루비츠는 크리스타의 자백에도 불구하고 드라이만에 대한 혐의점과 증거를 찾지 못하는 비즐러를 점점 의심하게 되고, 다시 한번 그에게 크리스타의 심문을 맡긴다. 크리스타는 배우로서의 경력 단절에 대한 협박을 못 이기고, 마침내 타자기의 위치를 자백하고 풀려난다. 슈타지의 요원들이 마지막 수색을 위해 드라이만의 집으로 들이닥치고, 수색이 시작되기 얼마 전 비즐러가 타자기를 든 채 드라이만의 집을 떠난다. 요원들은 결국 타자기를 찾지 못하고, 이 모든 상황을 괴로워하던 크리스타는 차도로 뛰어들어 자살한다.

비즐러의 배신을 확신한 그루비츠는 그를 한직으로 좌천시킨다. 4년 7개월이 지난 어느날, 어두운 방에서 우편물 분류 작업을 하고 있던 비즐러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공연장에서 햄프 장관과 이야기를 나누는 드라이만, 본인에 대한 감시가 전혀 없었다고 생각하던 드라이만은 햄프의 입을 통해 완벽하게 감시되었음을 알게 된다. 구 슈타지 본부를 찾아가 자료 열람을 하던 드라이만은 자신이 암호명 HGW XX/7에 의해 감시·도청되었고, 감시 보고서에 묻은 붉은 잉크로 그가 자신을 보호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HGW XX/7이 비즐러라는 사실을 알게 된 드라이만은 길에서 전단지를 돌리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게 되고, 2년의 세월이 흐른다. 서점 앞을 지나던 비즐러는 드라이만이 출간한 책을 보게 된다. ‘아름다운 영혼의 소나타‘, 드라이만이 연주하고 비즐러가 헤드폰으로 듣던 바로 그 피아노곡이었다. 책장을 넘기다가 ‘감사한 마음을 담아, 이 책을 HGW XX/7에게 바칩니다.’라는 문구를 발견한다. 눈시울이 다소 붉어진 모습으로 조용히 책장을 덮는 비즐러, 계산대에 책을 놓자, “선물 포장을 해드릴까요?” 점원이 묻는다, “아니요, 나를 위한 겁니다.” 비즐러가 대답한다.

후기

영화에서 보이는 비즐러는 외로운 사람이다. 아무도 없는 무미건조한 집,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집으로 부른 여성에게 잠시 더 있어 달라고 간청하는 장면이 비즐러의 삶을 보여준다. 비즐러가 점점 두 사람에게 감화되는 장면은 영화 곳곳에 비친다. 애초의 감시 의도와는 달리 점점 타인의 삶을 관찰하고 개입한다. 브레히트의 책을 몰래 훔쳐서 읽는 장면, 드라이만의 피아노 연주를 듣는 장면, 비즐러가 크리스타를 응원하는 장면 그리고 결정적인 단서가 될 드라이만의 타자기를 몰래 빼돌리는 장면 등, 표정 변화는 없지만 비즐러의 잔잔한 심경 변화를 바라보는 것도 이 영화의 큰 즐거움이다. 타인의 삶을 관찰하면서, 비즐러와 드라이만은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배려한다. 이 영화의 백미는 역시 드라이만의 감사 인사를 확인하고 보여주는 비즐러의 표정 변화라고 생각한다. 영화 내내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던 비즐러가, 미묘하지만 가장 극적인 감정 변화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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