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무도 모른다> 줄거리, 결말, 후기

크리스마스 전에는 돌아오겠다고 말하고 집을 떠나는 엄마, 12살의 아키라는 3명의 동생과 함께 엄마를 기다린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새해가 오지만 엄마는 돌아오지 않는다. 엄마가 준 돈도 떨어져 가고, 일자리를 구하려 하지만 나이 때문에 쉽지 않다.
<출처: ‘아무도 모른다’ 스틸샷>


줄거리

한 모자(母子)가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오고, 엄마는 남편은 해외에 잠시 나가 있고 아이는 1명 밖에 없다고 집주인에게 미리 거짓말을 한다. 잠시 후 이삿짐을 받기 시작한다. 엄마와 소년은 큰 여행 가방부터 서둘러 집으로 가지고 들어온다. 막내 여동생 유키, 셋째 남동생 시게루가 가방에서 나온다. 날이 저물자 12살 소년, 아키라는 역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는 여동생 교코를 데리러 간다. 그 날 저녁, 엄마는 아이들에게 큰 소리를 내지 말고, 가사를 책임지는 아키라를 제외하고는 밖으로 나가지 말 것을 당부한다. 엄마는 매일 일을 하고 밤늦게 귀가하고, 가사와 동생들을 돌보는 일은 첫째 아키라와 여동생 교코가 책임지고 있다. 어느 날 엄마는 아키라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말한다. 엄마에게는 그동안 많은 남자친구가 있었고, 아키라는 동생들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음 날 아침, 아키라는 한동안 집을 비운다는 엄마의 편지와 돈을 발견한다. 아키라의 일상에 특별한 변화는 없다. 집세, 전기세, 전화비, 가스비를 챙기고, 장을 보러 시내에 나간다. 집에 오면 동생들을 위해 저녁을 준비하고, 동생 교코는 빨래를 하면서 오빠 아키라를 돕는다. 한 달이 지났지만, 엄마는 돌아 오지 않고 점점 돈이 떨어져 간다. 아키라는 엄마의 전 남자친구 혹은 동생들의 아버지라 추정되는 사람들을 찾아가 돈을 빌린다.

마침내 엄마가 돌아오고, 속이 타는 아키라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는 듯, 동생들에게 선물을 챙겨 준다. 며칠 후 크리스마스까지는 돌아온다는 말을 남기고 엄마는 다시 집을 떠난다. 영화 내내 조용히 엄마를 돕고 감정을 표현하지 않던 아키라는 난 언제 학교에 갈 수 있는지, 엄마는 매사에 제멋대로라고 불만을 말하지만, 엄마는 본인의 행복을 찾으면 안 되냐는 황당한 대답만이 돌아올 뿐이다. 크리스마스에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고, 아키라는 엄마가 일하는 백화점에 전화를 걸어보지만, 지난달에 퇴사했다는 내용을 전해 듣는다. 엄마의 연락처를 알게 되어 전화를 해보지만, 엄마의 성이 바뀌었다는 사실, 즉 새 남편이 생겼다는 사실만 확인하고 말없이 전화를 끊는다. 해가 넘어가고 아키라는 엄마가 세뱃돈을 보냈다고 동생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세뱃돈을 나눠준다. 교코는 봉투에 쓰인 글씨체가 엄마의 것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유키의 생일 날, 아키라는 집안에서 답답해 하는 유키를 역 앞까지 데리고 간 뒤, 나중에 함께 비행기를 보러 가자고 약속한다.

엄마가 남겨둔 돈은 모두 떨어지고 아키라는 자주 가던 편의점에서 일자리를 구해보려 하지만 나이 때문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전기, 수도와 가스도 끊긴다.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던 동네 소녀 사키와 친해지고, 그녀는 아이들의 현재 상황을 이해하는 유일한 친구가 된다. 유통기한이 지난 편의점 음식으로 끼니를 연명하는 곤궁한 생활이 계속된다.

결말

의자에서 떨어져 막내 유키가 사망하게 되고, 다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보지만, 연결이 되지 않아 사키에게 도움을 청한다. 해가 지고 여행 가방에 유키와 그녀가 좋아하던 과자를 넣는다. 유키에게 같이 보자고 약속했던 비행기를 볼 수 있는 공항 근처에 그녀를 묻는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얻어 돌아오는 길, 사키가 같이 있다는 것 말고 아무것도 바뀐 건 없다.

후기

감독이 일본에서 실제 있었던 ‘아동방치‘ 사건을 소재로 찍은 영화이다. 암울한 상황이 계속되지만, 슬픈 음악이나 인위적인 연출로 관객의 감정이입을 유도하지는 않는다. 그저 3자의 시선에서 담담하게 진행될 뿐, 유키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는 장면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삼 남매가 사키와 함께 걸어가는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차라리 경찰에게 발견되거나, 엄마와 연락이 닿았으면 이렇게 답답한 심정은 아니었을 것 같다. 여운을 남긴다는 측면에서는 적절한 마무리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일본 영화나 소설을 보면 유독 담담하게 참거나, 조용히 순응하는 결말을 많이 보게 되는데 이런 숙명론적인 태도를 완전히 공감하긴 힘들 것 같다.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건조하게 표현하는 특유의 방식에 너무 익숙해져서 식상해진 탓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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