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인사이드 잡> 줄거리, 결말, 시사점

2008년 9월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과 AIG의 몰락은 세계 경제에 위기를 불러왔고, 경기침체, 집값 하락, 실업을 유발했다. 문제는 이 사태가 사고가 아니라 방만한 금융 산업의 성장에서 기인한다는 점이다.
<출처: ‘인사이드 잡’ 스틸샷>


줄거리

2008년 9월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과 AIG의 몰락은 세계 경제에 위기를 불러왔고, 경기침체, 집값 하락, 실업을 유발했다. 문제는 이 사태가 사고가 아니라 방만한 금융 산업의 성장에서 기인한다는 점이다. 세계 대공황 이후 2008년까지 미국은 금융 위기를 겪지 않았다. 관련 규제가 엄격했기 때문이다. 고객의 돈으로 투자하는 건 엄격하게 금지되었고, 투자은행은 주식과 채권 투자를 할 수 있었지만, 소규모의 동업(partnership) 형태로만 이루어졌다. 직접 돈을 조달하고 매우 신중하게 투자 결정을 해야 했다. 80년대 금융업의 성장으로 주주들의 투자금이 투자은행으로 흘러 들어가게 된다. 1981년 레이건 대통령은 메릴린치 CEO 출신 도널드 리건을 재무부 장관으로 임명하고, 경제학자 및 금융계 로비스트의 의견을 지지하여, 향후 30년간 대규모의 금융 규제 완화가 시작되었다.

90년대 말 금융계는 드디어 대형 회사로 합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고, 클린턴 정부는 이 가능성을 지지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시티코프와 트래블러의 합병이고 이는 대공황 이후 만든 글래스-스티걸 법(고객의 돈으로 위험한 투자를 금지하는 법)이 무용지물이 되는 합병이었다. 1999년 그램-리치-블라일리 법, 시티그룹 구제법으로 알려진 법이 의회에서 통과되면서, 금융권의 합병은 가속화되었고, 더 강력한 로비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조지 소로스는 이 사태를 이렇게 요약한다. 유조선의 전복을 막기 위해 오일탱크의 구획을 나눠 놓은 것처럼 금융시장에 규제를 만들어 놓았지만, 규제가 사라지면서 칸막이가 모두 사라졌다고 비유한다.

90년대 말 투자은행은 인터넷 관련 주식에 엄청난 거품을 만들었고, 2001년 그 충격을 받게 된다. 5조 달러의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투자은행은 관련 인터넷의 회사의 실패를 예견하고도, 매수 의견을 고수했다. 2002년 10개의 투자은행은 14억달러의 벌금을 내고 앞으로 달라지겠다고 대중에게 약속을 한다. 죄목은 정부 각료에 대한 뇌물 증여, 장부 조작, 칠레의 독재자인 피노체트의 돈 세탁, 이란의 핵무기 개발자금 세탁, 멕시코 마약 거래대금 지불, 회계 부정 등이 보도되었다. 90년대에는 파생상품이 대량으로 개발되기 시작한다. MIT 금융공학 교수 앤드류 로는 규제 완화와 파생상품이 동시에 가져다줄 위협을 규제기관, 정치인, 사업가 모두 간과했다고 말한다. 98년 로펌에서 파생상품을 다뤘던 브룩슬리 본이 상품선물 거래 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임명되었고, 파생상품 시장에 규제안을 발표한다. 그렇지만 클린턴 재무부의 그린스펀, 루빈, 서머스는 본을 비난하는 연설문을 발표하고, 결국 파생상품에 금융규제를 부과하려던 본의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밌는 사실은 그녀를 반대한 관련 장관, 상원 의원 등이 추후 대부분 투자 은행으로 이직했다는 점이다.

금융위기 이전에 많이 사용했던 유동화 혹은 증권화의 과정을 살펴보면, 예전에는 대출받아 집을 사면 집주인 즉, 채무자는 채권자에게 직접적으로 돈을 갚았다. 그렇지만 지금은 채무자의 상환 여부와 상관없이 채권자가 근저당권을 투자은행에 팔고, 투자은행이 근저당권을 다른 근저당(자동차 할부, 학자금 융자 등)과 결합하여 부채 담보부 증권(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 이하 CDO)이라는 파생상품을 만든다. 투자은행은 CDO를 투자자에게 판다. 이제 채무자가 주택담보 대출의 상환을 하면 CDO 투자자에게 돌아가게 된다. 투자은행은 자사의 CDO에 대해 신용평가회사로부터 등급 평가를 받게 되고, 실제 증권의 위험도와는 별개로 AAA 등급을 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가장 큰 문제는 채권자가 더 이상 채무자의 상환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고 더 위험한 융자상품을 만들고, 투자은행은 CDO판매를 통해 이익을 챙기는 것 외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신용평가회사도 투자은행으로부터 돈을 받지만 그들의 등급 평가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 (Sub Prime Mortgage)라는 용어에서 보듯이 애초에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 의한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CDO 상품이 많았다는 점이 문제다.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CDO 상품들이 미국 국공채에 버금가는 신용등급 AAA를 받고, 이런 쓸모없는 금융상품을 몇만 명이 넘은 은퇴자에게 매달 연금을 지급해야 할 공무원 연금공단 같은 기관에서 사들였다는 것이다.

쉬운 융자를 기반으로 쉽게 집을 사고 집값은 폭등하고, 역사상 최악의 거품 경제(2001~2007)가 만들어진다. 동시에 서브 프라임 모기지로 벌어들인 돈으로 월가는 보너스 잔치를 벌이고 있었고, FED의 앨런 그린스펀은 이를 규제할 수 있었지만 방관하고 있었다. 증권거래 위원회(Securities & Exchange Commission, 이하 SEC)도 투자은행에 대해 별다른 조사를 하지 않았다. 레버리지 비율(타인자본/자기자본)에 있어서도 2004년 SEC는 투자은행의 요청에 따라 레버리지 비율을 오히려 높이려 했고, 2008년 서브 프라임 사태가 터지기 직전 주요 투자은행의 레버리지 비율은 25~33에 육박하고 있었다. 즉 33의 레버리지 비율을 보인 모건 스탠리의 경우, 자기자본이 3.0%만 줄어들어도 파산하게 된다.

이 상황에 또 다른 폭탄이 더해진다. AIG는 보험 파생상품 신용부도스왑(Credit Default Swap, 이하 CDS)을 팔기 시작한다. 원리는 CDO에 문제가 발생할 상황에 대비한 보험인 셈인데, CDS를 구입한 CDO 소유자는 AIG에 분기별로 보험료를 내는 대신, CDO에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AIG로부터 손실을 보전받는다는 개념이다. 문제는 투기를 목적으로 물건이 없이도 CDS 그 자체에 투자하는 투기 세력이 있다는 것이다. 비싼 가격에 CDS를 팔고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지급하고 방만하게 회사를 운영했지만, CDO에 문제가 발생했고 AIG는 보험금을 지급할 능력이 없었다. 2006년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는 모습을 보인 것이 골드만삭스이다. 골드만 삭스는 AIG로부터 220억 달러의 CDS를 구매하고, CDO에 문제가 발생하면 CDS로 큰돈을 벌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 여기서 한술 더 떠 AIG가 CDS에 대한 지급 능력이 없다고 판단한 골드만 삭스는, CDS에 대한 보험에 별도로 가입하는 모습을 보인다. 추가로 CDO를 디자인하여 고객이 돈을 잃을수록 회사가 돈을 버는 구조를 만들어낸다. 2010년 4월 골드만 삭스의 최고 경영진은 이 사태에 대해 결국 의회에서 증언하게 된다.

2006년 2월 벤 버냉키가 FED 의장이 된 이래로 서브 프라임 대출은 치솟고 있었지만, FED의 아무도 이 문제에 대해 손을 쓰지 않았다. 2004년 초 FED가 아닌 FBI가 모기지 사기의 확산(재산 가치 과대평가, 모기지 관련 서류 조작 등)에 대해 경고했었다. 2005년 IMF의 수석경제학자인 라구람 라잔 역시 위기를 예상했었고, 저명한 경제·금융 컨퍼런스인 잭슨 홀 심포지엄에서, ‘금융발전이 세계를 위험에 빠뜨리는가?’ 란 주제로 보고서를 발표한다. 결론은 ‘그렇다’ 였고, 단기이익에 대한 보너스는 많지만 손실에 대한 대비가 없는 월가의 인센티브 구조가, 궁극적으로 금융계 전체를 붕괴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심포지엄에 참석했던 전 재무장관 래리 서머스는 라구람 라잔이 금융시장의 변화를 비판하고 그것을 뒤집을 규제를 주창한다며, 그의 주장을 러다이트 운동(19세기 초에 일어났던 기계파괴 운동)에 비유하며 격하해 버린다. 2006년 IMF 자문위원 누리엘 루비니도 같은 문제를 경고했다. 2007년 포츈지의 알란 슬로언도 기사에서 서브 프라임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했었다. 2007년 5월 헤지펀드 매니저 빌 아크만 역시 ‘최후의 희생자는 누구인가?’라는 글을 통해 서브 프라임 모기지가 가져온 거품과 이후 닥칠 재난을 묘사했다. IMF도 지속적으로 미국에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드디어 2008년 압류된 주택의 수가 폭등하고, 채권자들은 더 이상 그들의 근저당권을 투자은행에 증권화할 수 없게 된다. 투자은행에 남겨진 건 어마어마한 금액의 대출, CDO, 팔 수도 없는 부동산이었다. 2008년 3월 베어스턴스 은행에 현금이 떨어져서 제이피 모건 체이스 은행이 주식을 2달러에 인수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FED는 300억 달러의 구제 금융을 지원한다. 이때가 정부가 조치를 취하고 개입할 적기였으나 당시 재무장관이었던 헨리 폴슨 (전 골드만 삭스 임원)은 이때까지도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2008년 9월 7일 헨리 폴슨은 위기에 처한 주택금융기업인 페니 메이와 프레디맥을 국유화한다. 메릴린치는 파산 위기에 처했지만, 뱅크 오브 아메리카에 인수된다. 며칠 후 리먼 브라더스는 32억 달러의 손실을 보고하고 주가는 0에 수렴한다. 영국계 바클리즈 은행이 유일하게 리먼 인수에 관심을 보였지만, 미국 정부에 재정 보증을 요구했고 폴슨은 이를 거부했다. 리먼 브라더스는 결국 파산한다. 같은 주에 AIG는 CDS 보유자에게 130억 달러를 지불해야 했지만, 돈이 없었다. 9월 17일 미국 정부는 AIG를 인수하고, 다음 날 폴슨과 버냉키는 의회에 7천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신청한다. 이 파장은 비단 미국만이 아닌 전 세계 주식시장에 큰 충격을 주고 각국에 지난한 장기 경기 침체를 유발하게 된다.

대형 은행들이 소형 은행들을 인수함에 따라 규모가 커지고, 금융위기 이전보다 경쟁자도 줄어든 상태가 된다. 금융권은 점차 금융위기 직후보다 완화된 규제를 원했고 로비스트의 숫자는 다시 늘어난다. 더불어 한 가지 더 주목할 점이 있는데, 경제계의 저명한 학자들은 금융권에 대한 규제 강화보다는 규제 완화를 대부분 주장해 왔다는 사실이다. 학자들은 대통령의 경제 고문, FED 의장 및 이사, 재무부 등에 포진하여 정부의 정책 결정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동시에 금융권에 대한 컨설팅과 자문 및 이사회 참여 등으로 많은 돈을 벌고 있었기 때문에, 금융권의 의사에 반하는 정책을 제시할 수 없었다. 결국 금전적 이해에 의해 금융권의 로비스트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세금 감면 정책을 시행하지만, 그 혜택은 중산층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정치계에서 중산층의 마음을 잡을 수 있는 가장 쉬운 정책은 대출이다. 부시는 다시 대출 규제 완화를 통해 중산층이 이전보다 쉽게 집과 차를 구매할 수 있게 지원했지만, 선심성 정책은 금융위기를 불러온 도화선이 되었다. 금융위기 이후 취임한 오바마는 입법자들과 월가의 무책임함을 역설하며, 금융산업 개혁이 필요하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 통과된 법안은 당초의 주장에 비해 한참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만다. 공공정책 연구소에서 일하는 로버트 나이즈다는 이렇게 표현한다. “오바마가 규제개혁을 외쳤을 때 나는 속으로 비웃었습니다. 왜나면 오바마 정부도 월스트리트 정부거든요”. 오바마가 재무부 장관으로 내정한 티머시 가이트너는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FED의 뉴욕 총재였고, 골드만 삭스에 대한 구제금융을 결정했으며, 재무장관 임명을 위한 청문회를 할 때 규제의 효과를 믿지 않는다고 공식적으로 말했다. 경제고문으로 래리 서머스를 임명하고, 가이트너에 이어 FED 뉴욕 총재로 내정된 윌리엄 더들리는 골드만 삭스의 경제고문이며, 파생상품이 위험 분산 효과가 있다고 극찬한 인물이다. 상품선물 거래 위원회 위원장 역시 전 골드만 삭스 임원이었고, 투자은행의 이사회 및 자문·컨설팅에 참여했던 경제학 교수들도 오바마 행정부에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결말

2009년 프랑스의 재무장관(현재 ECB 총재)이었던 크리스틴 라가르드는 G20 미팅에서 금융계에 만연한 보너스 문화에 대해 엄격한 규제·감시를 주장하고, 2010년 유럽의회는 이를 법제화했지만 오바마 행정부는 이에 대해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2010년대 중반까지 월가의 경영진 중 아무도 사기 혐의로 기소·체포되지 않았고, 버블 시기에 지급된 보너스에 대한 환수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사건 조사를 위해 특별 검사가 임명되지도 않았다.


시사점

인사이드 잡, 내부소행이라는 제목은 다큐멘터리의 내용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내레이션이 금융위기 전후의 미국의 문제를 잘 정리해준다. 버블을 만든 장본인들은 사회의 공익에서 등을 돌리고, 돈과 로비로 정치계를 부패시켰고, 전 세계 경제를 위기로 몰았다. 그러나 재난의 책임자는 여전히 권력을 쥐고 있고, 그들은 자신들이 경제에 꼭 필요한 존재라고 주장하고, 경제원리는 너무 복잡해서 일반 대중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말하고, 다시 규제를 피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로비에 사용할 것이다. 애써 눈과 귀를 막고, 지식인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시스템의 능력을 맹신해서 발생한 ’08년의 금융위기는 이후의 건전한 금융 시스템 수립을 위한 반면교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금융위기 이후의 금융권-정계-학계의 움직임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2010년에 촬영되었고, 그 뒤로 오바마-트럼프-바이든 행정부까지 13년의 세월이 흘렀다. 문득 2023년의 미국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감독의 걱정과 우려가 해결되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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