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줄거리, 결말

비비안 마이어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를 보여주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우연히 중고 경매에서 필름 박스를 구입하게 된 존은 현상한 사진들이 꽤 괜찮은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작가에 대해 수소문해 보지만 정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
<출처: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스틸샷>


줄거리

비비안 마이어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그녀를 한 마디로 평가한다, “역설적이다, 대담하다, 기이하다, 괴상하다, 비밀스럽다, 개인적인 사람이었다”. 다큐멘터리의 화자인 존은 역사책을 집필 중이었기 때문에 오래된 사진들이 필요했고, 우연히 중고 경매에서 필름 박스를 구입한다. 책 주제와 별로 관련이 없어서 창고에 넣어 놓았다가 우연히 안에 든 사진을 현상하여 보던 중, 꽤 그럴싸한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비비안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한다. 작가에 대해 수소문해 보지만 정보를 찾지 못하고, 직접 사진을 현상하여 블로그에 사진을 올리기 시작한다. 그녀의 부고가 며칠 전에 올라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박스에 들어있는 번호에 전화를 걸어본 결과, 그녀가 유모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존은 그녀가 남긴 엄청난 양의 유품(미 현상된 필름 등)을 인수하고, 미술 갤러리나 박물관에 유품을 전달하려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스스로 유품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존의 다음 질문은 ‘왜 그녀는 사진을 찍게 되었는가? 그리고 이렇게 강박적으로 많은 사진을 찍었는가? 였다. 유품에서 얻는 연락처를 토대로 전화하다가 그녀가 간병인 혹은 유모로 일했다는 답변을 얻고 직접 방문하기로 한다. 그녀를 유모로 고용했던 사람들, 직접 돌봄을 받았던 아이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추억에 집착하던 사람, 키가 크고 긴 코트를 입고 독일 병정처럼 손을 높이 올려 걷고 항상 카메라를 지니고 다니던 사람, 그녀와 가까웠던 캐롤은 그녀를 매우 폐쇄적인 사람으로 기억한다. 비비안은 거주하던 방에 항상 자물쇠를 설치해 두었던 사실을 그녀의 고용주였던 린다가 기억해낸다. 자신을 전형적인 빈민층이라 여기고 푼돈에 부리는 부자들을 경멸하고, 병원이나 보험의 혜택도 받지 않았다. 열악한 환경에 저임금의 스웨트샵에서 일하다가 햇볕이라도 쬐고 싶어서 시작한 것이 유모였다. 이전에 비해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면서 시작한 취미가 사진 촬영이었다.

1959년 세계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카메라를 들고 방콕, 인도, 태국, 이집트, 예맨, 남미로 혼자서 여행을 떠나고 수천 장의 사진을 찍는다. 내성적이고 조용하고 비밀스러운 사람에 가깝고 이 다큐멘터리 자체를 불쾌해 했을 거라고, 작품을 인정받는 건 좋아했을지 모르겠지만 세상의 이목을 받는 건 싫어했을 거라고 지인들은 말한다. 인터뷰하는 사람 중 아무도 그녀의 가족 관계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저 프랑스 출신이라고 추측했지만, 계보학자에 의뢰한 결과, 그녀는 1926년 뉴욕 출생에 결혼한 적이 없고 평생 독신이며, 양친은 돌아가셨고 오빠가 1명이 있었지만 죽은 걸로 추측되었다. 어머니가 프랑스 출신이고 비비안이 찍은 사진을 조사하다 보니 프랑스에도 잠시 거주한 것 같았다. 존은 사진 속에 등장한 프랑스의 마을에 직접 방문, 마을 이장과 인터뷰하고, 그는 비비안을 매우 독특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비비안이 마을 사진관에 보낸 편지의 내용을 통해 그녀 역시 대중에게 작품을 공개하고 싶어 했음을 존이 확인한다. 존은 생전 그녀가 바랐던 소망을 대신해서 이뤄주기를 희망한다. 비비안이 돌보았던 미네소타의 잉거가 기억하는 그녀의 모습은, 인간의 우매함을 드러내는 살인, 강간, 폭력, 학대와 같은 뉴스 기사를 수집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사진 작품에서도 그런 시선이 드러난다. 죽어 있는 동물, 노숙자를 촬영하며 삶의 모순, 인간에 대한 반감을 표현했다고 전한다.


결말

유모로 일하는 와중에 수집벽이 점점 심해지고,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신문을 쌓아놓기 시작한다. 점점 기행이 심해지고, 사람들은 그녀를 견디지 못하고 해고하게 된다. 동시에 그녀의 말년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당연히 긍정적인 기대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캐롤은 1962년 비비안이 유모로 일하면서 아이들과 자주 가던 계곡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장소라고 생각해서, 쓸쓸하게 혼자서 생을 마감한 비비안을 그 장소에 묻어주었다. 사진작가 조엘은 왜 그녀가 작품을 대중에 공개하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을 품는다. 그녀의 작품은 작가 개인의 삶과 격리되지 않고, 삶이 고스란히 반영되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고 평가한다. 이후 존의 노력으로 뉴욕, LA, 런던, 독일, 덴마크에서 전시회가 열리고, 생전에 관심이 쏠렸으면 감당 못했을 테지만 사후에 주목받게 된 것이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른다고 지인들은 말한다. 사회의 통념대로 살지 못했지만 굽히지 않고 자기가 원하던 인생을 살다가 갔기 때문에 후회는 없을 거라고 의견을 더한다.

성격대로, 기질대로, 타고난 운명대로 사는 게 우리네 팔자임을 일견 부정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의지로 해결될 부분이 있지만, 큰 테두리에서 보면 타고난 성격의 밑그림 안에서 최적의 진로를 선택해서 그려 나가는 게 우리의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하다가 다소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유모라는 직업을 찾고, 사진이라는 취미를 발견하고 그녀의 삶이 녹아든 사진 작품을 찍지만, 자기 작품을 알릴 단 한 번의 기회를 결국 얻지 못한다. 본인 스스로 좋은 사진작가라는 사실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알릴 기회를 잡았다면, 그녀의 삶은 지금과는 다르게 기억됐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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